재벌 개혁이 다시 문제다. 1987년 이후 재벌개혁의 화두는 경제력 집중 방지를 위한 출자총액제한제로부터 시작하여, 지배구조 논의를 거쳐 이제 일감몰아주기와 공생발전으로 변천하였다. 그 사이 재벌도 정부지원에 의존하는 후진국형 기업에서 세계적 우량기업으로 성장했다. 재벌의 계열사수 변화와 출총제 존속과의 인과관계는 불분명하나 신성장 산업 외의 분야에 대한 출자제한이 없어진 것이 최근 빵집, 커피 점 등으로의 진출을 가능케 한 측면은 있다. 기업집단은 시장실패가 많은 후진국에서 그 존재의 합리성이 있고, 또 계열사간 역량과 자원 공유에 기반하여 선진국 기업이 장악한 시장에 후발진입을 가능케하고 경쟁력을 확보하는 이점을 가진다. 그랬던 것이 이제는 외국기업이 아니라 국내 후발기업의 진입과 생존을 어렵게 하는 부작용이 문제가 되고 있다. 국내 자본시장이 협소한 상황에서 정당화 되었던 내부자본시장 (출자에 의한 신사업 진출) 효과도 자본시장이 커지고 개방된 지금 정당화되기 힘들고 오히려 이로 인한 계열사 밀어주기가 문제가 되고 있다.

필자의 분석에 따르면 포춘500대급에 들어가는 기업을 얼마나 가지느냐가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느냐를 결정하는 핵심변수다. 중국은 이제 일본과 유럽국 보다 더 많은 포춘기업을 가지게 되었다 포춘급 기업을 한 개 더 가지게 되면 일인당소득이 0.3%P 증가하는 반면, GDP대비 포춘기업들의 매출합의 비율인 과도한 대기업 의존도는 성장에 부정적이다. 이 비율이 한국, 일본, 대만, 독일 모두 60%에 달하고 영국 프랑스는 70%가 넘는다. 그러나 이 부정적 효과의 절대치는 작아, 포춘기업 한 개 증가에 따른 이 비율증가는 성장률 0.03%P 감소 효과가 있다. 긍정적 효과가 10배나 더 큼은 대기업 밑에 많은 협력 중소기업이 살아가고 있고 글로벌 경쟁에서 대기업 우산 밖에서 중소기업 홀로서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시사한다. 이상적인 것은 결국 초우량기업과 중견기업이 같이 성장하는 것인데, 현재와 같이 소수 대기업의 지배력이 막강한 상황에서 자유방임은 이를 더 심화시킬 것이기에 시장경제의 건전한 경쟁성 유지 면에서도 정부개입은 정당화된다.

그러나 황금알을 낳는 닭을 죽이기 않기 위해서는 규제에 원칙이 있어야 한다. 사전적 행위 규제보다는 이를 허용하되 그 댓가를 치루게 하는 사후적 규제가 좋고, 자의성이 적고 투명 간단해야 하고, 외국기업 대비 역차별이 없어야 한다. 가령, 사전적 출자 규제보다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사후 과세가 더 좋은 규제이다. 그러나, 일감몰아주기에 의한 주가 상승 기여분은 측정이 어렵고 정상가 거래일 경우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일감 몰아주기는 계열사 출자라는 근본적 원인이 가져오는 여러 현상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른 대안은 출자라는 근본 원인에 대해 이를 허용하되 이에 대한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 것이다. 지금은 소유경영이 분리된 독립기업들의 왕국인 미국에서도 한국과 같은 기업집단이 지배적 형태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 부작용 해소를 위해 1935년 루즈벨트 개혁기에 계열사 간 배당에 과세를 도입하고 지분매각에 대한 세제 혜택 부여 이후 급속히 소멸된 바있다. 대부분 나라에서 이런 과세가 없으나 미국만 이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이중과세이지만, 순환성 출자 자체가 가공자본의 이중적 운용이므로 마찬가지이다. 다만 각 재벌이 출자 유지의 이득과 과세라는 손해를 각자 비교하여, 지주회사든 순환출자든 출자해소 등 선택할 수 있도록 적정세율을 책정하여 점진적 이행 유도가 바람직하다. 물론 이는 기업에 대한 증세이지만 특정 구조 강요라는 고문보다는 고통이 작다. 한국의 법인실효세율도 미일영프 등에 비해 매우 낳은 수준이다. 대신, 과거 수출액에 따른 훈장 수여처럼 매년 법인세총액 랭킹을 발표하는 등 칭찬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