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이제 신속한 추격자 전략(fast follower)을 버리고, 선점자(first mover) 전략으로 가야 한다는 소리가 많다. 그러나 맹목적인 선점자 전략은 위험한 선택이다. 과거 한국이 선점자가 아니었던 것이 아니다. 예를 들면 아이팟의 원형은 한국이 최초로 개발한 MP3 플레이어였고 스카이프라는 인터넷 전화도 새롬이 발한 다이얼패드가 최초이며 소셜 네트워크의 원조도 아이러브스쿨이나 싸이월드였다. 스마트폰도 애플 이전에 삼성이나 노키아도 개발한 바가 있다. 4G이동통신도 LTE말고 한국은 와이브로를 먼저 시작한 바 있다. 한국이 선점자를 못해서 문제가 아니라 이를 종국적인 성공으로 이어지게 못하는 다른 요인들이 문제이다. 여러 연구를 보면 선점자가 최종적인 승자가 아닌 경우가 오히려 많다. 이는 선점자 전략이 내포하는 두 가지 리스크 때문이다. 첫째는 여러 선택 가능한 기술과 표준 중에서 어떻게 맞는 선택을 하느냐는 리스크가 있고, 둘째로 새 제품 및 기술에 대한 초기 시장이 존재하느냐 또는 시장을 어떻게 창출할 것이냐 하는 리스크가 있다. 가령, 와이브로를 한국이 선택하여 밀어붙였지만, 시장에서 표준으로 확산되지 못한 사례는 위의 두 가지 리스크 모두에 걸린 사례이다.

그러면 한국에게 최적 전략은 무엇인가. 전략의 선택은 기술개발 능력의 강약과 자신이 표준 설정을 선도할 수 있는 네트워킹 및 문화코드 주도 능력의 강약이라는 두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미국 기업의 경우 양자가 다 강하기 때문에 선점자 전략이 유효한 선택일 수 있고, 과거 한국은 양자가 다 약해서 빠른 추종자 전략이 적절한 선택이었다. 그런데, 최근의 상황은 기술능력이 강해졌으나, 아직 표준 및 문화 주도 능력은 약한 제3의 조합 상태이다. 이 상황에서 선점자 전략은 최적이 아니고 병행자 (parallel mover) 전략이 유효할 수 있다. 한국의 디지털 TV 사례가 가장 적절한 예이다. 한국의 민관 콘소시움은 90년대 디지털 TV를 개발할 때 선진국들의 표준 논의가 4개로 진행될 때 이 4개에 대해서 각 다른 소구룹을 지정하여 병행적으로 개발을 진행하다가, 표준이 통합 결정되자마자 가장 빨리 이에 맞는 제품을 개발해 내는 선점자가 되었다. 현재, 현대차가하이브리드, 전기차, 수소차라는 3개 기술을 동시에 진행하고 있는 것도 병행 전략이다.

크게 보면, 최적의 전략은 빠른 추종자와 선점자 전략 사이의 적절한 균형이라고 할 수 있으며, 표준 및 시장 형성단계에서는 병행 추종자로서 역할하다가, 표준이 정해지면 빠론 진입을 하는 선점자 즉 fast mover가 되면 된다. 그리고 소비재와 중간재를 구분하면 문화 코드 등에 덜 민감하고 성능과 스펙이 중요한 중간재나 부품의 경우, 선점자 전략을 취해도 리스크는 적다. 반대로 소비재의 경우, 한국 시장이 작다는 점, 비영어권이라는 점, 문화 및 코드에 있어서 선도 국가가 아니라는 점 등을 고려할 때 선점자 전략에 대해 더욱 신중해야 한다.

한국의 성공 공식은 더 큰 외국 시장을 목표로 새 트렌드에 빨리 부응하는 상품을 남보다 더 빨리 효율적으로 만들어 온 것인데, 이런 성공 공식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 한국시장에서 잘나간다고 해서 혹은 기술적 우위만 믿고, 새롭거나 다른 트렌드를 무시하는 승자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또한 선점자 전략이 적절한 시장이 있는 반면에 중국, 인도와 같은 middle end 시장은 다르다. 미국 같은 하이엔드 시장과 또 다른 중간 시장을 고려할 때도 다른 전략을 병행하는 것이 적절하다. 즉, 과거의 일본 모델이나 애플식 미국 모델이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를 단순 모방하기 보다는 기존의 성공 공식의 연장선 상에서 계속 자신의 길을 추구하는 전략이 안전한 선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