왈라스는 틀렸고 슘페터는 맞았다; 조세의 재분배 기능 강화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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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철이 되면서 ‘경제민주화’가 화두다. 여야가 다 이를 내세움에 따라 관련되는 헌법 제119조가 주목을 받고 있다. 그 제1항에서 대한민국의 경제질서는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한 반면 2항에서는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하여, 입장에 따라 혹자는 1항을 혹자는 2항을 강조하게 되는 상황이 발생하였다. 이 내용을 하나의 조항으로 하지 않고, 두 조항으로 분리하여 분란의 소지를 만들기는 하였지만, 경제학자가 보아도 참 절묘하게 잘 균형을 취한 것 같다.

한국사회에서 시장원리라는 말은 곧 자유방임을 의미하고 정부개입은 이를 위반하는 것처럼 쓰이는 경향이 있지만, 경제학에서 시장경제의 효율성의 원천은 자유경제가 아니고 경쟁경제이다. 이론경제학은 효율성의 원천이 자유성에 나온다는 것을 증명한 적은 없고, 시장의 경쟁성이 담보될 때 나온다는 것을 증명한 바 있다. 시장이 경쟁적이란 것은 수요와 공급 양측에 충분히 많은 경제주체가 존재한다는 의미이고, 독과점은 이에 반하는 대표적 시장실패 사례이다. 이리 볼 때 119조 2항에서 시장지배력 남용을 규제하고자 함은 참으로 적절하다. 역사적으로 볼 때, 자유방임 자본주의는 독과점으로 귀결되었으며 따라서 모든 나라는 공정거래법을 통해 시장경제의 건전한 경쟁성을 확보하고자 하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효율성은 자원배분의 정적 효율성과 혁신에서 나오는 동적효율성으로 구분할 수 있다. 그런데 자유로운 경제 활동이 최상의 효율적인 결과를 낳는다는 일반균형이론은 매우 비현실적인 가정들을 전제로 할 때만 타당한 것이기에, 스티글리츠 같은 노벨상 경제학자도 시장경제가 비효율적인 상태가 일반적이라고 보았다. 자원배분의 효율성 명제는 가격이 오르면 수요가 하락한다는 정상적 수요곡선의 작동을 전제로 하는데, 금융자산과 같이 가격이 오를 때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는 수요가 작동하여 버블이 발생하는 자본시장에는 더욱 맞지가 않는다.

이리 볼 때, 시장효율성의 보다 핵심적 측면은, 효율적 자원배분이라는 정적인 측면이 아니라, 자발적 노력과 성과라는 동기부여에서 나오는 동적인 효율성이다. 즉, 왈라스는 틀렸고 슘페터는 맞은 것이다. 이리 볼 때 119조 1항에서 창의를 강조한 것은 참 절묘한 측면이 있다. 그동안 한국경제가 많은 정부 개입으로 정적인 자원배분의 효율성을 침해하면서도 고성장을 한 것은 동적효율성에 힘입은 바 크다. 그러는 가운데, 97년 외환위기로 자본시장을 개방하고, 동시다발 FTA로 더 한층 개방을 한 것은 그 긍정적 효과와 아울러 불안정성을 높이는 부수효과가 있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수효과에 대한 안정망을 갖추기 보다는 그 반대로, 감세로 기조를 잡은 것이 현 정부의 원죄에 가깝다. 그 결과 민주화 다음에 선진화라는 키워드를 살리지 못하고, 경제민주화에게 자리를 내주게 된 것이다.

그러나 경제민주화의 바른 방향은 기업 행위에 대한 사전 규제가 아니라, 가장 고전적인 방법인 조세를 통한 재분배 강화이다. 조세부담율의 선진국 평균이 35%인데 한국은 25%이다. 부자에 대한 소득세율이 낮고 세금을 내는 소득자의 비율도 선진국 평균인 80%에 비해 매우 낮은 50%인 반면, 조세로 인해 상대적 빈곤을 완화시키는 정도도 꼴치에 가까운 희한한 재분배구조를 가지고 있다. 법인세 부담도 각종 조세감면으로 대기업들이 중소기업보다 더 낮은 세율 적용을 받고 있다. 이런 기본 재분배 기능이 작동하지 않는 것이 분노를 낳고 그 분노가 엉뚱한 희생양을 찾고 있다. 법 앞의 평등이 법치주의라면 시장 앞의 평등을 지향하는 헌법 119조는 먼저 부의 창출을 장려하고 그 다음에 이를 잘 재분배하라는 뜻이다.